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볼 수 있고, 보는 것만큼 생각할 수 있다’ 라고 한다.

매일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바탕에는
스스로의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작용한다.

결정을 할 때마다 스스로의 생각 범위 내에서 하기에, 지금 내리는 결정들이 옳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결정을 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어 기쁨의 환호를 외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안 좋은 결과들이 있기에 반성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신기한 구석이 있다.

어느 때에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또 어느 때에는 하고 싶은 일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게 자기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고,
결정했던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넓고 깊어지는 생각의 크기를 바탕으로 또 다른 결정을 내린다.

무엇을 위해 한 걸음 더 나간다는 것이,
부족함을 채워가는 발걸음인지, 욕심을 부리는 발걸음인지.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1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포도주가 부글부글 끓고
시간이 지난 후 본래의 맛이 나는 것처럼.

어떠한 현상으로부터
시간 이 지난 후 잔잔해진 모습이
남아 있는 진짜의 것.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 들어 있는
에너지가 조화롭게 만들어 내는 매 순간들.

나에게 15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할지 내 머리 속을 처음 채우는 것을 보고,
그 생각에서 빠져 나와, 그것을 살펴 본다.

능동적 행동과 수동적 행동.

주어진 환경에 따라 부지런하게도, 한 없이 여유롭게도 행동하는 것에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부여해 보지만,

가끔은 스스로에게 냉철한 잣대를 적용해 본다.

2016년 11월 2일 수요일

상대주의와 진리


상대주의.
그것도 맞지만, 이것도 맞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점에서 신사적으로 보인다.

다양성은 존중 받아야 하지만,
진리라는 것이 마땅히 존재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틀에 갇혀 진리로 보였는데,
틀을 벗어 나오니 예전의 그것이 진리가 아니었을 때의 당혹감
또는 이제라도 진리를 알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마지막 날과 첫 날의 하루를 사이에 두고
문화가 되어버린, 무엇이 진리인지 알기 어렵게 하는 요소들.

졸린 눈을 비비고 깨어 있도록 하자.